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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 모두에게 좋은 소리 들으려다 정작 자기 일은 하나도 못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한때 그랬습니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까 봐 아이디어를 꺼내지 못하고, 관계를 지키려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이 '착한 사람 강박'이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천재성보다 성격 구조가 성공을 결정한다는 이야기, 지금부터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 — 우호성의 역설
저는 어릴 때부터 '두루두루 원만한 사람'이 이상적이라고 배웠습니다. 친구들과 척지지 않고, 선생님에게 밉보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좋은 말을 들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성인이 되어 제 주변의 고수들을 관찰하면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텍사스 대학교의 심리학자 샘 고슬링(Sam Gosling)의 연구에 따르면, 뛰어난 기업가 정신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일관된 성격 패턴이 나타납니다. 바로 낮은 우호성(Agreeableness)과 높은 개방성(Openness)의 조합입니다. 여기서 우호성이란 빅 파이브 성격 모델(Big Five Personality Model)의 다섯 가지 요인 중 하나로, 타인과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욕구의 크기를 나타냅니다. 쉽게 말해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는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출처: Cambridge University Press 성격심리학 저널).
우호성이 지나치게 높으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이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기 생각보다 타인의 반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반면 우호성이 적절히 낮은 사람은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이게 공격성과는 전혀 다릅니다. 일론 머스크가 자기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는 이유도 같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는 겁니다. 증오조차도 상당한 집중력을 소모하는 행위니까요.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내 주변에 30명 정도가 있었다면, 지금은 수만 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 됩니다. 무난한 직업을 갖고, 튀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어떤 창조적 시도도 하지 않는 삶. 저는 그게 가장 무서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우호성(Agreeableness)이 지나치게 높으면 타인의 시선에 에너지를 과소비하게 됩니다
- 기업가 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은 평균보다 낮거나 평균 수준의 우호성을 보입니다
- 초연결 사회에서 '모두와 잘 지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천재는 타고나는가 — 개방성과 학습기제의 차이
일론 머스크를 보면서 "타고난 천재니까"라고 정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나는 타고나지 않았으니 나는 안 된다"는 자기 정당화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논리를 한 번 의심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어린 시절 아스퍼거 증후군에 준하는 진단을 받았고, 교사 기록에도 집중력 저하와 학업 능력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 선생님들이 틀린 게 아닙니다. 당시를 정확하게 관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는 자기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자마자, 소파에서 잠을 자면서도 그것에만 집중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졌고 시간 감각도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학습기제(Learning Mechanism)입니다. 학습기제란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서 정보를 추출하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는 내면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민간 우주선처럼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IQ가 높아서가 아니라, 이 학습기제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개방성(Openness)은 학습기제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개방성이란 새로운 아이디어, 경험, 관점에 얼마나 열려 있는가를 측정하는 성격 지표입니다. 심리학자 댄 길버트(Dan Gilbert)와 조르디 쿠아드(Jordi Quoidbach)의 연구 '역사의 종말 착각(The End of History Illusion)'에 따르면, 인간은 지난 10년의 변화는 크게 느끼면서도 앞으로의 10년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Science 저널, 2013). 나이 들수록 잃을 것이 많아져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이유입니다. 반면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미래가 더 크게 변할 거라 믿고, 그 변화에 올라타려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변화를 기회로 인식하는 습관의 차이입니다.
- 학습기제(Learning Mechanism): 경험에서 정보를 추출하고 자신을 수정하는 내면적 능력. 교육 수준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습니다
- 개방성(Openness): 새 아이디어와 경험에 열려 있는 정도. 기업가 정신이 높은 집단에서 일관되게 높게 나타납니다
- 역사의 종말 착각(End of History Illusion): 과거 변화는 크게, 미래 변화는 작게 느끼는 인지 편향
피트(Fit)형 vs 디벨롭(Develop)형 —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는가
일론 머스크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에는 일고의 고민도 없이 던지고 다른 걸 합니다. 미세 조정이나 타협에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이걸 보면서 "저도 저래야 하는 건가?"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 부분에서 의견이 좀 다릅니다.
성격심리학에서는 성장 방식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피트(Fit)형입니다. 자기에게 딱 맞는 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디서도 집중하지 못하다가, 그것을 찾는 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는 유형입니다. ADHD 진단을 어릴 때 받는 경우가 많고,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두 번째는 디벨롭(Develop)형입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조금씩 바꾸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다시 수정하면서 점점 자기 영역을 좁혀가는 유형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확실히 이 디벨롭형에 가깝습니다.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이건 아닌데"를 반복하다 결국 "이거였구나"에 도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두 유형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하냐가 아닙니다. 심리학 연구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최종적인 성취의 크기에서 두 유형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거기까지 가게 만드는 건 하나입니다. 끊기지 않고 계속 한다는 것. 화려하게 달려가는 사람과 소리 소문 없이 꾸역꾸역 걷는 사람, 10년 뒤 어느 쪽이 더 멀리 와 있을지 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인간관계 갈등을 중재하고 평판을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다 쓰면, 정작 개방성을 발휘하고 학습기제를 작동시킬 여유가 남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우호성을 적절히 낮게 유지하는 전략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를 어디에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제가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타인의 시선보다 제 호기심을 쫓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을 때였습니다.
- 피트(Fit)형: 딱 맞는 일을 찾기 전까지 무관심하다가, 발견 후 폭발적으로 몰입하는 유형
- 디벨롭(Develop)형: 하면서 조정하고, 조정하면서 성장하는 유형. 통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두 유형 공통의 성공 조건: 화려함이 아닌 '끊기지 않는 꾸준함'
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자기가 무엇에 몰입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호성을 낮추라는 말은 남을 공격하라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라는 뜻입니다. 그 여백에 개방성이 자라고, 학습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모범생 코스가 나쁜 게 아닙니다. 그 코스가 유일한 정답이라는 강박이 문제입니다. 피트형이든 디벨롭형이든, 자기 방식으로 끊기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이 10년 뒤 가장 멀리 와 있을 겁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오늘도 그렇게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