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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택배 일을 '단순 노동'이라고 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6년 만에 3억을 모으고, 한 달 수입 1,000만~1,300만 원을 버는 택배기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루 700개 배송, 하루 5만 보, 신발을 두 달에 한 켤레 소진. 이 숫자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동선최적화, 택배를 '과학'으로 만든 사람
택배 일은 그냥 물건 들고 뛰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분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 인식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핵심은 동선최적화(Route Optimization)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동선최적화란 배송 구역 안의 건물 주소와 경로를 미리 분석해, 이동 거리와 시간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작업을 말합니다. 단순히 빠른 게 아니라, 어디에 주차하고, 어느 방향으로 돌아야 총 이동 시간이 줄어드는지를 쉬는 날에도 직접 걸어가며 몸으로 익히는 과정입니다.
실제로 이분은 쉬는 날 담당 배송 구역을 직접 발로 뛰며 차가 진입 불가한 골목, 최적 주차 포인트, 각 건물의 도로명 주소까지 전부 외웠다고 합니다. 그 결과 처음 60개 배송에 12시간이 걸렸던 것이, 지금은 같은 물량을 4~5시간으로 줄였습니다. 시간 대비 배송 효율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엘리베이터 활용 방식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마다 오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분은 각 층에 큰 물건을 먼저 내려놓고 본인은 계단으로 내려오는 방식을 씁니다.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 자체를 없애는 것이죠. 탑차에 슬라이딩 옆문을 설치해 운전석에서 바로 화물 접근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걸음 수 하나, 문 여는 동작 하나도 시간이라는 사고방식이 업계 상위 1%를 만든 겁니다.
- 쉬는 날 배송 구역을 직접 걸으며 주소·골목·주차 포인트 전부 암기
- 엘리베이터 대기 대신 층별 물건 선배치 후 계단 하강으로 시간 단축
- 탑차 슬라이딩 옆문 설치로 운전석에서 바로 화물 접근 가능
- 배송 사진 인증(증거 촬영)을 3초 컷으로 처리하는 루틴 정립
성실함이 만든 숫자들, 하루 700개의 현실
저도 20대 때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돌아보면, 일하기 싫으면 금방 그만두고,2~3개월은 구직한다는 핑계로 쉬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이분의 하루 루틴을 읽고 나서 그 시절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하루 700개 배송 기준으로 이분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새벽 6시 반 기상, 7시 반 캠프 도착 후 적재 작업, 10시 출발, 오후 2시 반 오전 물량 완료, 4시까지 오후 물량 재적재, 8시 배송 마감. 귀가 후 씻고 밥 먹으면 10~11시. 그리고 바로 수면. 여가 시간은 사실상 없다고 본인도 말합니다. 평균 택배기사의 하루 배송량이 약 300개 수준(출처: 한국도로교통공단 물류환경 분석 자료)임을 감안하면, 이분은 업계 평균의 두 배 이상을 매일 소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개수당 단가(Per-Unit Rate)가 수입의 기준이 됩니다. 여기서 개수당 단가란 배송 한 건당 책정되는 고정 금액으로, 부피나 무게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한 집에 아이돌 CD가 70박스 묶음으로 배송되든, 소형 택배 1개가 배송되든 건당 요금은 같습니다. 그렇기에 단위 시간당 처리 건수가 곧 수입이고, 동선 단축이 곧 수익 증가로 직결됩니다. 건당 600~800원 단가로 하루 700건을 처리하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하루 42만~56만 원의 수입이 나옵니다.
이분은 점심도 거릅니다. 밥을 먹는 시간이 배송 시간을 줄이고, 결국 고객에게 가는 물건이 늦어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걸 단순히 '과로'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목표를 향한 철저한 자기 통제로 볼 것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처음엔 전자에 가까웠는데, 결과 숫자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책임감, 골병 걱정보다 출근을 택하는 이유
"그렇게 일하면 골병 든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이분은 어린 시절 레그-칼베-퍼테스병(Legg-Calvé-Perthes Disease, LCP)으로 고관절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레그-칼베-퍼테스병이란 소아기에 대퇴골두(넓적다리뼈 머리 부분)의 혈류가 차단되어 골두가 괴사하는 질환으로, 이로 인해 다리 길이가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는 날엔 심하게 절뚝거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결근을 하지 않습니다.
이분이 반복해서 강조한 단어가 바로 책임감이었습니다. 택배는 특정인이 쉬면 그날 그 구역 고객들이 물건을 못 받습니다. 대체 인력이 즉각 투입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기사 개인의 결근은 다수의 불편으로 이어집니다. 그 사실을 이분은 본인의 직업 윤리로 내면화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힘들어도 꼭 출근한다"는 말이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직업 정체성에 가까운 말로 들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몸이 자산인 직업에서 무리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가 하는 의문입니다. 출처: 고용노동부의 택배 종사자 근로 실태 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근골격계 질환 호소율은 타 업종 대비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그런 우려를 모르는 분이 아닐 텐데, 이분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성실함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제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준의 책임감은 '습관'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뒤에 강한 동기가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 그게 무엇인지는 다음 소제목에서 이어집니다.
성공의 진짜 연료, 가난했던 기억과 엄마의 새벽
저도 20대에 남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만 들여다보면서 정작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이분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머문 부분은 화려한 수입 숫자가 아니라, 그 수입을 만들어낸 내면의 이유였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무너지고, 채권자들이 집을 찾아오고, 결국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야간 물류센터로 출근해야 했고, 반지하 집에서는 비가 오면 빗물이 실내로 쏟아졌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넓은 아파트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어둡고 좁은 반지하를 향해 걷던 그 감정. 이분은 그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달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라고 부릅니다. 외재적 보상(돈, 인정)이 아닌, 자기 내면의 가치나 경험에서 비롯된 행동 동력을 말합니다. 외재적 동기는 보상이 사라지면 행동도 흔들리지만, 내재적 동기는 외부 조건이 나빠져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분이 비 맞고 귀가하는 날에도, 고객에게 상처받는 날에도,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이유가 바로 이 내재적 동기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제 20대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일이 싫으면 금방 그만두고, 쉬는 명분을 쉽게 만들던 그때의 저에게는 그런 동기 자체가 없었습니다. 성공을 원했지만, 성공을 원하는 이유가 없었던 거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서 지금은 더 조급하고 더 절실합니다. 트럭이 텅 비었을 때의 뿌듯함, 퇴근길 시원한 콜라 한 캔. 이분이 말하는 삶의 낙이 그렇게 단순한 게 저는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깊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 내재적 동기는 외부 보상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행동의 원천이다
- 6년 누적 저축 3억: 월 고정 지출 300~400만 원 외 전액 저금하는 원칙 유지
- 하루의 만족 기준을 '트럭이 빌 때'로 단순화한 명확한 보상 루틴 보유
흔히 성공은 특별한 재능이나 운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는 그 믿음에 조용히 반박합니다. 20살에 월급 190만 원으로 시작해, 쉬는 날도 구역을 걸으며 외우고, 점심을 거르고, 신발을 두 달마다 갈아 신으며 만든 숫자가 월 1,300만 원입니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배경도, 자본도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분처럼 살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오늘 제게 주어진 일에 이분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집중하고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되었습니다. 요령을 피울 방법보다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출발점 같습니다.